일본 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9. 이수정과 한국의 복음화 - 언더우드, 아펜젤러
2022-09-08


1883년12월 13일, 이수정은 미국교회에 편지를 보낸다.

′이수정의 미국교회를 향한 마케도니안 콜′로 불리기도 하는데

1884년 1월 26일에 ′The Illustrated Christian Week′ 46페이지에

′조선을 위한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실리고 ′Missionary Review′ 1884년 3월호에는

′Rijutei가 미국의 크리스쳔들에게 보내는 인사′라는 제목으로 실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Rijutei는 미국교회의 형제 자매들에게 인사드립니다′



Rijutei라는 이수정의 일본식 이름으로 보내진 이 편지에서

자신의 개종, 조선은 아직 이방인의 나라인 것, 자신의 성경번역 상황,

동료들의 수세와 개종, 과거 (카톨릭)신자의 박해,

조선의 개국 상황에 따른 선교의 가능성 증대 등을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설명하면서 지금이 조선 선교의 적기임을 설명하고

마지막 부분에 선교사의 파송을 긴급히 요청하고 있다.



′당신들의 나라(미국)는 우리에게 기독교의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들이 서둘러 선생들을 보내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런 가르침이 꼭 주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걱정됩니다..

비록 나는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당신들이 파송할 선교사들을

최선을 다해서 도울 것입니다.

나는 정말 진지하게 여기에서 일하는 분들과 협의하고 그 자신의 사역을 

준비할 누군가를 당장 일본으로 보내줄 것을 간청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가장 최선이고 안전한 계획입니다.

내가 드린 말씀에 깊은 고려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일 나의 요청이 허락된다면 나의 기쁨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







이수정의 이 편지는 미국 기독교 선교단체와

젊은 선교사지망생들의 호응을 받게 된다.


그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언더우드아펜젤러 두 선교사이다.


언더우드는 1884년 12월 16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885년 1월 25일 요코하마에 도착하였고

아펜젤러 부부는 1885년 2월 3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

2월 27일 요코하마에 도착하였다.

언더우드는 약 2개월 간 요코하마의 헵번박사의 집에서 기거했다.

언더우드는 이 기간동안 이수정을 만나 조선말을 배우고

이수정이 번역, 출판한 마가복음 언해를 가지고

아펜젤러 부부와 같이 제물포에 도착한 것이

1885년 4월 25일 부활절이었던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본격적인 한국선교가 이 두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고 

현재의 장로교와 감리교는 이들을 통해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은 셈이다.



 계속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옛정자  그늘.′

 

 

 

 
파빌리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