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4. 종흥사, 성불사 -요코하마
2022-08-05

2020년 2월 8일(토). 

요코하마의 아침을 호텔 방에서 맞는다.

 방에서 비스듬한 방향으로 멀리 후지산의 자태가 보인다.

 

카메라 렌즈를 한껏 당겨서 잡아본다.  


 

 

어제도 느꼈지만 일본의 공기가 무척 맑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엔 이런 날씨를 보기 힘들다.

저 멀리 도쿄의 건물들도 잘 보인다.

공기오염이 없었던 우리 어렸던 시절이 그립다.

맑은 공기 속에서 살았던 것이 그리 오랜 옛날도 아니다.

 

그런데 황사나 미세먼지 원인의 절반은

이웃나라를 잘못 두었기 때문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도 많은 경우 국제적인 관례나 예법에 어긋난 주장을 해대는 데는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옛날엔 봄에 잠깐 스쳐지나가는 황사로 인한 대기오염 외에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지금은 사시사철 불어오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우리들의 폐를 더럽히고 있는데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지내는

 우리네 처지가 한심하기까지 하다. 

 

호텔 앞에 있는 건물들의 옥상을 보며

룸메이트 김기홍집사님과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우리네 같으면 으레 있을 수 밖에 없는

옥상위의 너저분한 것들이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깨끗하게 정리된 옥상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기까지 해서 사진으로 담아본다.

 

호텔 뷔페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우고 체크아웃을 한다.

오늘 첫 방문지는 미국의 헵번선교사가 일본에 와서 거주했거나

의료활동을 했던 곳으로 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곳들이 바로 불교 사찰인 종흥사와 성불사.

하긴 교회가 생기기 전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버스에서 내려 자그마한 개천을 끼고 잠깐 걷는다.

2월 9일인데도 날씨가 따뜻한 곳이라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3~4분 걸었을까, 종흥사(宗興寺 소코지)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건물은 전혀 절 답지 않게 생겼다.

 

가이드인 장이사님이 종흥사, 헵번선교사에 대해 설명을 한다.

이번 우리 여행 때문에 많은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상당히 긴장한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하는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서

보통의 단체여행객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아닌데다가

어제 시로교회와 카이간교회에서 상당한 연구를 한

배요한목사님과 김일석목사님의 설명을 듣고는

베테랑 가이드를 자처하는 장이사님도 조심이 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역시나, 잠깐 부족한 부분은 목사님의 보충이 필요하다.

 

입구에 붙어있는 안내.

옛날의 종흥사는 전통적인 사찰의 모습이다.  

글을 번역하면...

 

′종흥사와 헤본(헵번)박사

 

(앞부분 생략)

개항 당시 미국인선교사이자 의사였던 헵번박사가

여기에서 치료소를 열었다.

그것을 기념하는 돌비석이 경내에 세워져 있다.

이 헵번박사는 <헵번식 로마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일본에서 최초의 일영사전을 완성하고 성경의 번역 등도 했다.

후에 명치(메이지)학원을 창설하는 등

우리나라(일본)의 교육에 힘을 쏟으신 분이다.′

 

일본의 유명대학인 메 이지(明治)대학이

 헵번이 세운 헵번숙(헤본숙 ヘボン塾)에서 시작된 것을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지간한 것들은 눈에 띄는 대로 사진 찍어두는 버릇이 있는

내가 빠뜨린 것이 있다.

위의 글을 제대로 읽었으면 찾아봤을 텐데...

′그것을 기념하는 돌비석이 있다는 것을 흘려보았던 것.

이 글을 쓰며 인터넷에서 찾아본다.

바로 아래의 사진들이다.

아, 이 비석을 보기는 했는데 인물이 언뜻 보기에

이 사찰과 관련된 일본인 스님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눈을 돌려버렸는데 그가 다름아닌 헵번선교사였던 것이다. 

나의 경솔함이 여기에서도 나오니 조금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비석 내의 설명을 다시 찾아보았다.

 

′종흥사′

 

1859년(안정 6년)헵번이 일본에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선교의사 D.B. 시몬스가 일본에 와서

이 종흥사를 숙소로 했다.

시몬스는 그 후 명치 원년(1868)이 되어서

요코하마 시립대학 의학부의 전신인

십전(十全)의원에서 많은 외과수술을 하고 제자를 교육했다.

그리고 구충제 세멘원으로도 유명하다.

미국선교사 네비우스도 한때 종흥사를 숙소로 했다.

시몬스, 네비우스가 본 사찰을 떠난 후에

1861년 4월부터 9월까지 헵번은 종흥사는 헵번의 치료소가 되었다.

헵번은 성불사에서 이곳까지 통근하며 다수의 환자를 무료로 진찰하였는데

입원환자도 있었다.′(하략)

 

헵번의 부조를 제공한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잘 알아볼 수가 없어서 생략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은 헵번선교사의 사진이다. 

(1815~ 1911)

 

 경내에는 여느 일본의 사찰들 처럼 동네사람들의 묘지가 있다.

 

 

종흥사를 나와 성불사로 가는 길에는 간간이 매화나무에 꽃이 피어 있다.

 

길을 가던 중 조그만 교회가 보인다.

요코하마 메구미교회 - 은혜라는 뜻의 메구미이니 은혜교회인 셈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글 이름이 보인다.

아마도 재일교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회인가보다. 

 

성불사에 도착했다.

사적 외국 선교사 숙사적(史跡 外國宣教師宿舍跡) 

 

안내판이 먼저 눈에 뜨인다.

 

성불사

(앞부분 생략)

′안정 6년(1859년)의 개항당시에는 미국인 선교사의 숙소로 사용되었는데

헵번은 본당에, 브라운은 주지의 거실에 머물렀다고 한다.

헵번은 헵번식 로마자로 알려져있고 일본 최초의 일영사전을 완성했다.

그리고 브라운은 성경과 찬송가의 일본어 번역에 힘을 쏟았다.′

 

정토종 성불사

 

성불사에서 버스로 돌아가는 길이다.

참 오랜만에 보는 함석집이다...

우리 어릴 때엔 일본말 그대로 도단이라고 했는데...

 

집 전면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집도 있다.

골목에 쓰레기 하나 휴지 한 장 버려진 것이 없다.

깔끔하다.

일본에 대해 여러 가지 감정이 있을 수는 있지만

깨끗하게, 정리정돈을 잘 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 태도는 사실 배울 점이 많다.

아니, 우리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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