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8. 이수정과 성경의 번역
2022-09-01

요코하마 시로교회의 초대 목사이기도 했던 헨리 루미스목사는

1876년 지병으로 인하여 미국으로 귀국했다가 5년 후에

재일본 미국성서공회 총무가 되어 일본으로 돌아온다.


신사카에교회에서의 소식을 접한 루미스목사가

1883년 5월, 이수정과 만나게 되고 성경의 번역을 제안한다.

루미스목사의 편지에 의하면

′이수정은 한학자로서 일본 최고의 학자와

동등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었으며

국한문혼용체의 왕실문서의 작성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의 한시(漢詩)에 모두가 감탄했으며

저명한 일본의 신문은 그의 작품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고

그의 높은 학식과 능력, 동시에 그의 높은 지위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루미스목사에 의하면 불과 1개월 채 되지 않는 6월 9일까지

마가전, 마태전, 누가전, 요한전과 사도행전을

한문성경에 토를 다는 형태로 번역 완료하였다.

이것이 현토한한신약성서(縣吐漢韓新約聖書)인데

1884년 각 1000부씩 인쇄하였다.

당시 조선의 양반이나 지식층들은

한문에 익숙하여 있기 때문에 한글성경보다는

오히려 한문성경의 수요가 더 있었다고 한다.



(현토한한신약성서 마가전)


 



 

 


(현토한한신약성서 마태전)


 

 

이보다 먼저 중국, 만주를 통해 만들어진 로스역 순한글

 

예수셩교복음전서을 받아보고 이에 대해서 크게 실망한 이수정은

 

한글 문법, 문체의 무시 등으로 출판에 부적절하다고 했다.

 

 

 


 

1884년 4월 마가복음을 국한문혼용체로 번역을 완료했고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라는 이름으로

 

1885년 2월에 출간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마가전복음서언해는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선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루미스목사의 편지에는 

 

이수정이 성경 모두의 번역을 완성하는 것이

 

자신의 계획이라고 했다고 한다.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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