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순교지 나가사키, 세계문화유산이 되다. "

기독교역사와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일본.
그러나 단일국가 최대 순교자를 낸 나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피의 역사가 존재한다.

순교 역사의중심인 나가사키에는 과거 기독교에 대한 탄압으로
30만명이 처형당하는 상황에서도 무려 250년간을 숨어지내며
신앙을 유지해온 놀라운 크리스천들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WGN의 모태인 한일연합선교회는
지난 2005년부터 나가사키 순교지순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한국교회에 소개하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힘을 싣었고,
마침내 유네스코는 이중 12곳을 희귀한 종교문화로 인정하여
2018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

나가사키 순교지 순례 코스(3박 4일)
항공편
1일차
2일차
3일차
4일차
인천 -> 나가사키
나가사키 평화공원
26인 성인 순교지
처자 이별 바위
호코바루 처형장
머리-몸 무덤
마츠라 사료 박물관
교회와 사원이 보이는 풍경
히라도 자비에르 기념교회
야이자 화형장
나가사키 -> 인천
선박편
(부산 ▶ 나가사키/오무라 ▶ 사세보/히라도 ▶ 부산)
1일차
2일차
3일차
4일차
부산 -> 나가사키
나가사키 평화공원
26인 성인 순교지
처자 이별 바위
호코바루 처형장
머리-몸 무덤
마츠라 사료 박물관
교회와 사원이 보이는 풍경
히라도 자비에르 기념교회
야이자 화형장
사세보 -> 부산
포인트 스팟 POINT SPOT
01ㅣ스즈타 감옥터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산 위에 세워진 스즈타 감옥터는 6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최대 33명이 수감되었던 곳이다. 그 중 몇몇은 참수형이나 화형을 당했고, 당시 종신형을 선고받은 10세, 11세 형제는 60여 년 동안 갇혀 있다가 74세, 75세로 숨을 거두었다. 이처럼 이들은 예수를 부인하기만 하면 당장 풀어 준다는 말을 듣고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가 죽음을 맞이하였다.
02ㅣ처자 이별 바위
코오리 쿠즈레로 오무라 감옥에 있던 수감자 131명은 검거된 다음 해인 1658년, 200인의 무사가 엄중히 호송하는 가운데 호코바루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이곳에서 수감자들이 가족, 친척들과 마지막으로 이별을 나누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처자 이별의 눈물바위’라고 불리게 되었다. 당시 너무나 많은 눈물이 흘러서 지금까지도 바위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원래 7개의 바위가 있었는데 태평양 전쟁으로 3개가 사라지고 현재는 4개 만이 남아있다.
03ㅣ호코바루 처형장
오무라 영내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의 피가 흐른 곳이 바로 호코바루 처형장이다. 1657년 코오리 쿠즈레(오무라령의 박해) 당시 체포되어 참수형이 결정된 406명 가운데 131명이 1658년 7월 27일 호코바루의 처형장에서 처형되었다. 이들 중에 어느 누구도 흐느끼거나 두려움으로 소리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참수당하는 순간 칼 휘두르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04ㅣ머리·몸 무덤
코오리 쿠즈레(오무라령의 박해) 당시 호코바루에서 참수된 순교자 131인을 사쿠라바바의 인적이 드문 대나무 숲 속에 두 개의 구덩이를 파고 매장하였다. 매장 후 3일 만에 몸체를 다시 파내어 오무라만에 버렸다고 전해진다. 머리와 몸을 따로 매장한 이유는 죽은 크리스천이 부활할 것을 겁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처음 매장했던 장소에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순교자 몸 무덤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05ㅣ26인 순교비
26명의 크리스천이 처형된 곳으로, 1962년 26인 순교 100주년을 맞아 기념비와 기념관이 세워지고 ‘니시자카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최초로 26명이 처형당한 이후 600명 이상의 크리스천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일본 크리스천인 후나고 씨가 만든 26성인 기념비는 감사와 기쁨을 안고 하늘에 올라가려고 하는 26명의 순교의 순간을 형상화하였으며, 이 중에는 12~14살의 어린 소년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06ㅣ야이자 화형장
카밀로 콘스탄치오 선교사가 화형된 야이자 언덕에 야이자 공원의 순교기념비가 세워진 곳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카밀로 콘스탄치오 선교사는 1605년 일본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하던 중 1614년 도쿠가와 막부의 금교령에 의해 마카오로 추방되었다. 그는 1621년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사가와 이키츠키에서 선교하던 중 체포되어 화형을 당했다. 그는 순교하기 직전 일본어와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로 전한 설교를 통해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07ㅣ마츠라 사료 박물관
이곳은 일본 외교무역을 가장 먼저 성공시킨 히라도의 영주 마츠라 다카노부의 저택이었다. 후에 박물관으로 개장했는데 박물관 안에는 1587년 6월 19일 발령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크리스천 금제의 정서(선교사 추방령)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갖가지 고문 장면을 세밀하게 표현한 끔찍한 사진들과 1700년에 만든 지구의, 생활용품 등 마츠라 집안에 전해 내려온 다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